투자 미팅 날짜가 잡히고 "IR자료 먼저 보내주세요"라는 연락을 받으면, 가지고 있던 회사소개서나 정부지원사업 사업계획서부터 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파일에 시장 규모 슬라이드 몇 개를 덧붙여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만든 IR자료는 분량은 많아도 투자자에게 익숙한 순서와 달라 핵심을 찾기 어려운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15년간 수백 건의 제안서와 발표 자료를 만들며 확인한 건, 처음 만드는 문서일수록 내용보다 순서를 먼저 정해야 작업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투자사들이 직접 공개한 가이드를 바탕으로 IR자료 만드는 순서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목차
  1. 목차는 세쿼이아의 10개 항목 순서로 잡습니다
  2. 슬라이드 하나에는 메시지 하나만 담습니다
  3. 분량은 10~15장, 발표는 20분, 글자는 30pt를 기준으로 잡습니다
  4. 국내 투자사가 짚는 실수를 함께 확인합니다
  5. 회사소개서·사업계획서를 옮길 때는 이것부터 뺍니다

목차는 세쿼이아의 10개 항목 순서로 잡습니다

IR자료 목차가 될 세쿼이아 10개 항목을 메모 카드에 적어 한 줄로 늘어놓는 창업자

목차를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 벤처캐피털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은 'Writing a Business Plan'이라는 글에서 투자 검토용 자료에 들어가야 할 항목을 10개로 정리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회사 목적: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한 문장으로 정의합니다.
  2. 문제: 고객이 겪는 불편과, 지금의 해결 방식이 가진 한계를 보여줍니다.
  3. 해결책: 우리 제품이 왜 독특하고 오래갈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4. 왜 지금인가: 이 해결책이 왜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고 왜 지금 가능한지 밝힙니다.
  5. 시장: 고객이 누구이고 시장이 얼마나 큰지 제시합니다.
  6. 경쟁과 대안: 직접·간접 경쟁자를 보여주고 이길 계획을 설명합니다.
  7. 비즈니스 모델: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설명합니다.
  8. 팀: 창업자와 핵심 멤버가 어떤 사람들인지 소개합니다.
  9. 재무: 매출과 비용 자료가 있다면 넣습니다.
  10. 비전: 5년 뒤 무엇을 만들어낼지 보여줍니다.

국내 투자사 매쉬업벤처스의 이택경 대표가 쓴 IR 자료 작성 가이드도 이 10개 항목을 뼈대로 삼고 있습니다. 해외와 국내 투자사가 같은 순서를 쓴다는 건, 투자자들이 이 순서로 자료를 읽는 데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빈 슬라이드 10개를 만들고 이 항목 이름을 임시 제목으로 붙여두면 자료 전체의 뼈대를 한 번에 세울 수 있습니다. 임시 제목은 다음 단계에서 결론 문장으로 바꿉니다.

슬라이드 하나에는 메시지 하나만 담습니다

뼈대를 세웠다면 슬라이드마다 무엇을 말할지 정해야 합니다. 미국 액셀러레이터 Y Combinator의 파트너 Kevin Hale은 피치덱 디자인 강의에서 좋은 슬라이드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뒷줄에 앉은 사람도 읽을 수 있을 만큼 글자가 크고 선명해야 합니다(legible). 둘째, 슬라이드 하나에 아이디어 하나만 담아야 합니다(simple). 셋째, 잠깐 보기만 해도 핵심이 바로 보여야 합니다(obvious).

이 원칙을 적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슬라이드 제목을 결론 문장으로 쓰는 것입니다. '시장 규모'라는 제목 대신 '국내 반려동물 보험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로 성장하고 있습니다'처럼 쓰면, 투자자는 그래프를 읽기 전에 이 슬라이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슬라이드에 하고 싶은 말이 두 개 이상이라면 슬라이드를 나누거나, 덜 중요한 쪽을 부록으로 옮겨주세요.

Kevin Hale은 투자자가 기억해야 할 핵심을 5~7개로 추리라고도 조언합니다. 10개 항목 전부를 똑같은 비중으로 설명하기보다, 우리 회사가 가장 강한 항목 몇 개에 힘을 싣는 편이 투자자 기억에 남기 좋습니다.

분량은 10~15장, 발표는 20분, 글자는 30pt를 기준으로 잡습니다

회의실 모니터에 큰 글씨의 IR자료 화면이 떠 있고 테이블에 20분 타이머와 10/20/30 메모가 놓인 모습

벤처투자자 가이 가와사키(Guy Kawasaki)는 투자 유치처럼 상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발표에 '10/20/30 규칙'을 제안합니다. 슬라이드는 10장, 발표 시간은 20분 이내, 글자 크기는 30pt 이상으로 맞추라는 규칙입니다. 30pt가 너무 엄격하게 느껴진다면 청중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의 나이를 2로 나눈 숫자를 글자 크기로 쓰라는 계산법도 함께 제시합니다.

국내 기준은 조금 더 넉넉합니다. 매쉬업벤처스 가이드는 첫 미팅용 자료라면 부록을 빼고 슬라이드 15장 안팎이 적당하다고 설명합니다.

두 기준을 함께 놓고 보면, 본문은 세쿼이아 10개 항목에 맞춰 10~15장으로 만들고 상세 재무표나 기술 설명은 부록으로 분리하는 방식이 가장 무리가 없습니다.

국내 투자사가 짚는 실수를 함께 확인합니다

매쉬업벤처스 가이드에는 투자자 입장에서 아쉬운 자료의 공통점도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중 처음 만드는 자료에서 꼭 챙겨야 할 항목을 네 가지로 추렸습니다.

첫째, 팀 슬라이드를 빼고 보내는 경우입니다. 가이드는 이를 큰 실수라고 짚으며, 멤버 이름만 나열하지 말고 전공과 경력을 함께 적으라고 설명합니다. 이름만 올린 외부 자문위원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라는 조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둘째, 주요 경쟁자를 빼는 경우입니다. 경쟁자가 없다고 쓰거나 슬라이드에서 빠지면 투자자는 시장 조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경쟁 구도를 한 장으로 보여주는 방법은 '제안서 경쟁사 분석, 포지셔닝 맵 한 장이면 충분한 이유' 글을 참고해주세요.

셋째, 이것저것 다 잘하겠다고 쓰는 경우입니다. 가이드는 선택과 집중이 없는 계획을 투자자가 가장 싫어하는 형태로 꼽습니다. 사업 영역이 여러 개라면 지금 집중할 한 가지를 앞에 세우고 나머지는 마지막 비전 슬라이드에서 확장 계획으로 보여주세요.

넷째, 슬라이드가 글자로만 채워졌거나 반대로 도식과 표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입니다. 어느 쪽이든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자료를 보내기 직전에 팀, 경쟁자, 집중, 시각 자료 네 항목만 다시 확인해주세요.

회사소개서·사업계획서를 옮길 때는 이것부터 뺍니다

두꺼운 회사소개서에서 연혁과 로고 페이지를 빼내 얇은 IR자료 묶음으로 정리하는 창업자

처음부터 새로 만들기보다 기존 회사소개서나 사업계획서를 고쳐 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문서를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이때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은 내용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덜어내는 일입니다. 옮기기 전에 아래 세 가지부터 정리해주세요.

첫째, 연혁은 한 줄로 줄입니다. 회사소개서의 연혁 슬라이드는 거래처에 신뢰를 주려고 넣는 것이라, 투자자에게는 창업 시점과 주요 성과 두세 개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매쉬업벤처스 가이드도 경진대회 수상이나 지원사업 선정 같은 자잘한 연혁은 투자자가 관심을 두는 항목이 아니니 주요 부분만 남기라고 조언합니다. 나머지 성과는 매출, 고객 수, 재구매율처럼 성장을 보여주는 숫자로 바꿔 해결책이나 비즈니스 모델 슬라이드에 넣어주세요. 이런 초기 성과 지표를 투자 업계에서는 '트랙션'이라고 부르며, 성과가 충분하다면 별도 슬라이드로 분리해도 좋습니다.

둘째, 고객사 로고와 수상 이력은 전부 싣지 않습니다. 로고 수십 개를 나열하기보다 앞에서 말한 트랙션 숫자 하나가 투자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줍니다. 로고는 대표 고객사 몇 곳만 남겨주세요.

셋째, 사업계획서의 긴 문장은 슬라이드 제목 한 줄로 바꿉니다. 정부지원사업 사업계획서는 심사 양식에 맞춰 문단으로 쓰는 문서라, 그대로 옮기면 슬라이드 하나에 글자가 가득 찹니다. 문단마다 결론 한 문장만 뽑아 제목으로 쓰고, 세부 근거는 부록으로 보내주세요.

같은 회사 이야기를 담아도 문서마다 읽는 사람이 다릅니다. IR자료가 회사소개서·제안서와 어떻게 다른지는 'IR자료 vs 회사소개서 vs 제안서, 용도부터 다릅니다' 글에서 자세히 다뤘으니 함께 참고해주세요.

마무리

처음 만드는 자료라 막막하다면 세쿼이아의 10개 항목으로 목차를 먼저 세우고, 슬라이드마다 결론 한 문장을 제목으로 쓰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분량은 본문 10~15장, 글자는 30pt를 기준으로 잡고, 보내기 전에는 팀과 경쟁자 슬라이드가 빠지지 않았는지 꼭 확인해주세요.

투자 미팅 날짜는 잡혔는데 IR자료를 직접 정리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하다컴퍼니에 IR자료 제작을 문의해주세요. 가지고 계신 회사소개서와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투자자가 읽는 순서에 맞춰 다시 구성해드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IR자료 뜻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IR은 Investor Relations의 약자로, 기업이 투자자와 소통하는 활동 전체를 가리킵니다. 스타트업에서 말하는 IR자료는 투자 유치를 위해 회사의 사업과 성장 가능성을 설명하는 발표 자료를 뜻하며, 피치덱이나 IR덱이라고도 부릅니다. 상장사가 실적 발표 때 공개하는 기업 IR자료와는 목적과 구성이 다르니 참고 자료를 찾을 때 구분해주세요.

IR자료는 PPT로 만들어야 하나요, PDF로 보내야 하나요?

작업은 파워포인트나 구글 슬라이드 같은 발표 도구로 하고, 메일로 보낼 때는 PDF로 변환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PDF는 받는 사람의 환경과 상관없이 글꼴과 레이아웃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변환할 때 글꼴이 깨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PPT PDF변환 시 레이아웃 깨지는 이유와 해결법' 글을 참고해주세요.

IR자료 제작을 맡기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

가지고 있는 회사소개서나 사업계획서, 최근 매출과 고객 수 같은 성과 숫자, 팀 멤버의 전공과 경력을 먼저 모아주세요. 여기에 투자 미팅 날짜와 발표 시간, 메일로 먼저 보내는 자료인지 여부를 함께 알려주시면 분량과 구성을 정하기 쉽습니다. 자료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세쿼이아 10개 항목 가운데 비어 있는 부분을 함께 확인하면서 채워나가면 됩니다.